2010.04.08 7:30 @청어람5실
강사 : 박준용 선생님

간단하게 5-6명씩 조를 나눠서 토론으로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룹토론
크리스천 정체성으로 문화의 영역에서 겪는 갈등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Group 1. 영화 장르가 크리스천 장르보다는 세상적인 장르-섹스, 동성애 등
다이어트 붐이 불면서 다이어트 요가문화-종교적인 정신의 갈등(명상..)
음악- 재즈.. 재즈의 생겨난 동기나 방법적으로 불순하다고 좋지 않다는 시선을 가짐
Group 2. 청소년에게 영적으로 안 좋다는 영화를 보여줌으로 갈등을 겪은 경험 (ex.미이라)
크리스천연예인이 기독교적이지 않은 배역(무당..)을 맡음으로 겪는 갈등
교회 안에서 동성애를 다룬 영화 (ex. 메종드히미코)에 대해서 나눌 때 동성애코드만 집중해서
겪는 갈등
영화 <아바타>를 교황청에서 반크리스천영화로 규정한 경우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야 한다. 모호한 화법이 많다(하나님이 원하지 않아서, 교회에 대해서 신앙적으로 문제가 된다. 종교성문제, 소재문제 등)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정확하게 이야기 해야 한다. 두리뭉실하게 이야기 함으로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부탁.
Group3. 술자리문화(술을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단란주점(2차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식기도 문화- 간식을 먹을때마저 비신자 앞에서 식기도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야동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스크립쇼?
혼전순결지켜야 하는 문제/ 성소수자
뉴에이즈 문화
제사문화에 있어서 절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 문제

크리스천의 문화 속 갈등
크리스천들이 세상 속에 있기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니다. 매 시대마다 갈등 고민이 있어왔다.
신,구약- 이방민족 속에 들어가서 겪게 되는 문제 뿐만 아니라 신약 이후에는 이방민족이 들어와서 크리스천 문화안에서 겪게 되는 문제도 존재한다.
먼저 이방민족이 초대교회 공동체에 들어왔을 때 할례 문제의 갈등이 있었다. 또한 크리스천이 세상에서 겪는 문제로 대표적으로 고기논쟁이 있었다. 초대교회 당시 대부분 유통되는 고기의 2/3는 신전제사음식이었다. 나머지 1/3과 섞어서 팔았기 때문에 이것을 먹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이때 사도바울은 연약한 자을 위해서 먹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이러한 논리로 문화를 이야기함(파시즘적으로) 예를 들어서 짧은 옷을 입은 사람이 교회에 오면 이야기함. 패셔너블하지만 혹시라도 연약한 지체가 실족할 수도 있다. 라는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은 본인이 싫어하고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이야기 한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고기논쟁은 취향(taste)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신앙의 본질적인 것이다.
실족은 다른 교회를 가는 차원이 아닌 배교의 관한 문제이다. 신앙본질이 어그러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제사제도는 음복이 가장 중요하다. 조상신에게 음식을 받치고 그 음식을 모든 사람 (여자, 어린이)이 나눠먹는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에게 받친 음식을 같이 나눠먹음으로 귀신과 합일하는 것이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제사문화는 비슷하다. 이것은 신앙적인 본질의 문제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점은 하나님을 완전하게 떠났다기 보다는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이방신'도'섬기는 것이 문제였다. 두 가지를 같이 섬기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간음, 음란이다.
바알, 아세라가 이야기 하는 것은 현세적 욕망을 상징한다.
고기논쟁은 그것의 연장선상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이야기로 옮기자면 그것은 단지 피어싱(패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는 문제이다. 즉 돈, 관계, 권력, 섹스의 이야기이다.
사도바울처럼 자유로워져야 한다. 즉, 어디에든지 처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리차드 니버 <그리스도와 문화>인가

이처럼 초대교회의 문제는 문화와 관련된 문제였다.
삶의 영역에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으로 문화의 갈등을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통찰력은 구약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고민과 갈등은 지속되었다. 현재의 문화의 갈등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서 이미 고민하는 영역이 있었고 나름의 솔루션과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사례, 가능성, 한계 등을 돌아보고 문제의 갭을 줄여야한다.
이러한 작업을 했던 사람이 리차드 니버 <그리스도와 문화>이다.
여기에는 5가지 유형론이 나온다. 전제는 이 유형론들은 모든 사람의 삶을 담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유기체이다. 또한 그 가변적인 인간이 가변적인 타인과의 관계영역에서 파생되는 갈등 충돌 화해가 문화인데 가변적인 것을 유형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니버 스스로도 이 유형으로 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유형론의 장점은 유형화, 개념화된 것을 통해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나의 삶이 타당한지 점검하는 것에 유용하다.
이런 유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긍정적인 지점과 한계를 알고 있다면 소통이 가능해 진다. 반성적 성찰이 가진 유익이다. 또한 자신의 문화의 태도, 신념은 근거가 없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체계의 빈틈과 모순을 발견해서 든든한 상식과 가치체계를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유형론은 이러한 것을 위해서 필요하다.
크리스천이 문화를 대할 때 주요한 5가지 반응이 있다.
1. 대립모델 : 그리스도와 문화는 상관없다.

대표적으로 터툴리안은 예루살렘과 아테네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아테네는 인간지성의 상징, 헬라 전통의 근원으로 그리스신관이 대표적이다. 이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엽기 변태 부도덕함 등... 무의식의 심연의 편린에서 근친상간과 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태적인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주변에서 간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신화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인정 할 수 없으나 그래서 신을 빙자해서 인간의 욕망을 대신 이야기한다. 인간의 무의식의 욕망의 심연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없다 하면 다룰 수 없다. 그러나 인정하게 되면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부분을 은폐한다.
문화는 좋은 영향은 미치지 않지만 나쁜 영향은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무익한 문화에 대해서 크리스천은 완전히 타락한 세상의 악한 영향으로부터 떠나야 하는 것이다.
* 장점 :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돈, 물질, 자본의 논리로부터 반하는 삶을 산다. 자본과 돈에 경도되어 있는 삶에 경종을 울린다. 친환경적인 삶의 패턴을 유지해 나간다. 세속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실천한다. (떼제공동체, 예수원, 수도원...)
* 단점 : 절대화되면 문제가 된다. 죄에 대해서 피상적이 될 수 있다. 죄는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안의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밖의 문제에 집중한다. 비교적인 죄의 우월감에 젖어있기 쉽다.
이 대립모델은 예수의 존재자체로 깨질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세속화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신이 철저하게 인간이 되었다.
2. 일치모델 : 그리스도와 문화는 같다. 오히려 문화 `안`에 속해 그 특이성을 상실해 버린 그리스도인이다. 결국 통합되었다기 보다는 ‘문화’만 남아있다.

세상에 좋은 문화가 많다. 정말 좋은 문화는 인간을 지향한다. 그러나 인간은 선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 선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세상의 다양한 종교나 문화는
어떤 것이 든 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관점은 갈등이 없다. 당대에 가장 유명하거나 인기 있는 지식이나 문화에 기대어서 기독교적인 모습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로 본다. (혁명적 예수, 부자논리, 공화당, 민주당논리..)
세속문화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갈등하지 않는다.
* 장점 : 삶에 적극적이다. 사회의 삶에 능동적으로
* 단점 : 통속화, 세속화 되면 대단히 타협적인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피뿌린 예수의 복음 진리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복음의 진리는 무의미하다. 성경에 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타락, 구속, 부활과 구원의 논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타락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로 보고 구원은 이러한 삶의 틀을 뒤집어 엎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을 이야기한다.

3. 종합모델

종합이 되어있지만 상부 하부로 나눠져 있다. 피라미드 구조 안에 통합되어 있다고 본다.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에서 파생) 결론적으로 문화는 악한 것이 아니다. 다만 트레이닝 될 뿐이다. 물론 그 자체가 구원을 주지는 못하나 훈련된 문화가 구원과 만나게 되었을 때 놀라운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카톨릭 신앙의 본질이다. 불교(혹은 타 종교)에 대해서 훈련의 관점으로 본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훈련 중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자체로는 상위로 올라갈 수 없다. 도움이 필요하다. 상부구조에 성직자(천주교의 신부님)들이 도울 수 있다. 이때 올려주는 상징이 성례전이다.
남미 카톨릭 전통에서 볼 수 있듯이 성인(saint)이 죽은 후 신으로 추앙된다. 세속적인 신의 껍데기를 대신 기독교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 장점 : 세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본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이 속에서 악을 발견하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모든 것이 훈련의 과정으로 본다. 이런 준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된다. 종교심(훈련)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서 화해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다.
일원론, 종합론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16세기 종교개혁과 17세기에 과학혁명의 모태가 된다. 인식론의 전환은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알프레드 뒤러 (Albrecht Durer, 1471 - 1528)의 <어린토끼>의 그림과 같이 작은 털 묘사에 신경쓰게 된다.

알프레드 뒤러 , 어린토끼, 수채화, 1502
(출처 : 네이버이미지)
* 단점 : 대립/일치 모델의 각각 장점을 취해서 종합모델을 만들려고 했으나 각각의 단점 역시 내재하고 있다. 이원론의 사고 방식은 일상적인 맥락 안에서는 성속을 분리한다.
예를 들어 전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각자가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통속적인 신앙이 될 수 있다. 삶의 일상화가 별로 중요해 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례전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내재되어있는 죄의 영향력을 간과한다.
4. 역설모델 : 두 부분이 통합적이기도 하나 뒤엉켜있다. 분리되지 않는다. 떨어질 수 없는 물과 기름과 같다.

문화는 복음에 관계없고 복음은 문화와 관계없다. 이것이 역설이다!
복음은 사회, 정치, 경제에 관심 없다. 그러나 문화의 요구에 대해서 부정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두 영역이 한 카테고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반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요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을 빙자해서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독교 단체에 의해서 기독교적인 문화(정치, 경제..)을 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 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완성 혹은 선을 지향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문화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화가 없다면 동물의 왕국이 남을 뿐이다. 복음의 요구는 문화의 요구와 관계없이 본질, 인간, 존재, 크리스천 된 삶의 미시적 실천, 근본적 변혁을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은 노예의 제도에 대한 관심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다.
노예제도가 없어지더라도 더 사악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다만 제도는 유지되나 근본적인 내용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전복된다 하지만 그것은 복음과 관계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모순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죄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나라가 도래했으나 하나님나라가 올 것이다..
자크 엘룰은 진리는 모순율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이해는 모순이나 하나님의 관점은 아닐 수 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뒤엉켜서 가라는 것이다.
* 장점 : 겸손한 태도를 갖는다. 신중하고 치열한 삶을 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단점 :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진보적 냉소주의적 혹은 근본주의적 보수적이 될 수 있다.
(사도바울이 노예제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결국 사회의 어떤것에어떤 것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5. 변혁모델 : 일반적인 개혁적 기독교세계관

(이 부분은 특별히 이미지로 설명해주지 않으셨는데 제가 알아서! 해봤어요)
이 모델에서 문화는 최소한 쓰레기는 아니다. 타락했으나 나쁘게 되지는 않았다.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분리모델’이다.) 단지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영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다른 방향성(이데올로기, 사상)에 돌린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것이 죄이다.
타락을 윤리적 타락으로 보지 않고 방향성의 왜곡으로 본다. 그래서 세상의 문화에 배타적이지 않고 세상의 문화의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잘못된 방향성을 크리스천이 변혁해야 한다.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있다고 본다. (역설모델과 비교해 볼 때)
*장점 : 적극적, 도전적,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
*단점 : (니버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음)
기세의 문제는 진취성 부분이다. 기독교 문화, 정치 등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세상 사람들은 변혁의 대상이 될 뿐 동역자는 아니다. 그러나 개개인이 세상 속에서 변화하는 주체로 서는 것은 힘들다. 결국은 믿음을 가진 사람 '만'이 모여서 단체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 시키려고 한다.
이것은 일방향적인 소통을 한다.

Q) 5가지 모델을 점검해봐야 한다. 나는 어떤 모델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크리스천 정체성으로 이 세상의 문화에 반응하는가?
한 모델과 정확하게 일치되지는 않는다. 문화에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을 때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우선 교회생활과 관련된 문화에 반응할 때에는 변혁모델을 지향하나 종합모델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이때 말하는 교회생활문화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세상의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성속의 구분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면서 오히려 일상의 부분이 성을 위해서 속해져 버리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적인 활동을 할 때는 오히려 일치 모델의 형태를 갖는다.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보면서 기독교적 메시지나 기독교적 세계관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혹자는 유독 예술분야를 대할 때는 태도가 완곡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강한 신비주의를 가지고 계신 부모님께서 문화에 대해서 대립문화+역설모델의 단점(근본주의보수적)의 부분을 취하고 계셔서 어느 정도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 일치모델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부처님 오신날 TV에서 방영되는 부처상을 같이 보고 있으면 부모님은 영적으로 안 좋은 영향력을 준다고 생각하고 채널을 돌리신다. 그러나 나는 부처가 신이 아니라 최고의 성인으로 경지에 이르렀다면 배울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싸운다. ㅡㅡ;; 유독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에 의해서 갖게 된 문화적 유형일지도....